상투바위를 찾아서 (1) - 상투바위 연정
설악산에서 가장 긴 능선.<서북능선>을 종주할 때면 항상 만나게 되는 낯익은 풍경이 하나 있다.
위의 사진과 같은 풍경 말이다. 오른쪽으로는 암릉이 무겁게 흘러 내리고, 뾰족한 바위 하나가 옆 능선 바로 뒤에 숨어서
얼굴만 살짝 내민 채, 오가는 이를 지켜 본다. (뒤통순가?...)
나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저 바위가 <상투바위>인줄 알았다. 요너메 (짝퉁)<상투바위>를 만나게 되면, 무척 반갑다. 왜 반가울까?
(빨간 별표는 위의 사진을 찍은 곳)
설악의 <서북능선>이 어떤 능선인지 쉽게 설명하자믄... 대한민국 사람이면, 적어도 한 번쯤은 한계령을 넘어 동해안에 가본 적이 있으리라.
자동차를 타고 한계령을 꼬불꼬불 넘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높이 치솟은 설악의 연봉들을 보게 된다.
그 연봉들로 이어지는 험준한 능선을 타고 한계령을 따라 대청봉까지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서북능선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참.... 길다"는 것이다.(ㅠㅠ 언어 순화하기 조낸 힘들다. 헉!!)
요즘처럼, 한계령 휴게소에서 간식거리나 좀 챙겨들고,서북능선의 서쪽 절반 (내리막)만 후다닥 맛을 보고 돌아가는 가벼운 당일산행이라면 모를까..
혼자서 비박장비 모두 갖추고 장수대를 통해 오르막으로 종주하게 되면, 초등생 하나 정도 업고 가는 셈이니...
서북능선의 대략 중간지점이라 할 수 있는 귀때기청봉 쯤 오게 되면 물도 떨어지고, 몸도 지치고, 배도 고프고...
시원한 물 냉면 한 그릇 생각이 간절해 진다.
바로, 그 때!!! 위의 사진과 같은 바위가 나타나면 "아!! 상투바위다." ....하며 반가워하게 된다.
상투바위는 상투바위골에 살고, 상투바위골은 귀때기청봉의 옆 동네고,
귀때기청봉은, 서북능선의 절반이고, 귀때기청봉 정상에서 30분만 내려가면,한계령으로 흘러내리는 <도둑바위골> 샘터가 나타나니,
상투바위의 출현은 곧, "전방 2km에 오아시스"를 알리는 표지판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반가운 메세지를 알려주는 고마운 바위라고 해서... 친한 척하며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껏 한 번도 통성명을 한 적도 없고, 다른 이한테 정식으로 소개받은 적도 없으면서,
내 멋대로 "너, 상투바위지? 방가 방가~!".... 이래서는 안되는 법인데 말이다.
암튼, 몇 년 전이던가... 나는 저 바위의 이름이 <상투바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 근데, 너 이름은 머니?" 이렇게 연결되어야 정상인데, 어쩐 일인지....
"그렇다면...진짜 상투바위는 어디에 있능겨?" 고약하게도, 내 호기심의 방향은,
지난 날의 과오를 씻는 참회 쪽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과오를 다듬는 집착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쩝...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아직도 그 과오를 확실하게 다듬지 못한 채,
꿈 속에서 본 님을 기루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상투바위 연정은 깊어만 갔다.
1351봉에서 바라본 귀때기청봉 빨간 별표는 장군바위골 방향으로 내려다 보이는 (짝퉁) 상투바위 사진을 찍은 곳
위 사진의 빨간 별표 위치에서 뒤돌아 본 1351봉/1408봉 모습
(2) - 상투바위골 이상없다
설악산에서 <상투바위>와 <상투바위골>
을 찾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북능선으로부터 한계령 방향으로 흘러
내리는 골짜기는 그 수가 적지 않은데, 대
개의 등산지도에는 <상투바위골>이 분명
하게 표시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골짜기 하나, 하나마다
옛부터 전해져 내려 오는 이름이 있을 법한
데,(토박이 이름들은 특유의 향기와 맛이
있어서, 외지인들이 붙여준 이름들과는
은근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
모든 골짜기의 이름이 지도상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등산지도 (축척,
1/75,000 ~ 1/50,000)에는 <상투바위골>
이 표시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설악산 서북능선의 남쪽 사
면으로 흐르는 모든 계곡 들에 대한 일람
표이다. 이름이 알려진 계곡들은 모두 기
재를 하였으며,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계곡들은 편의상 "A, B, C,.골"로 명명
했다.
문제의 지역은 (아래 그림에서 빨간 채색
이 되어있는 영역) 상투바위골과 장군바
위골이 위치한 지역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거의 모든 설악산 등산지도에는 귀때기청 서쪽 안부에서 발원하는 계곡이 <상투바위골>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제작연도나 제작사 별로 내용이 조금씩 다른 점은 있지만, 위의 지도들을 통해 나타난 정보를 종합해 보면,
상투바위골은 분명히 한계령의 <자양2교>로 흘러내리는 계곡이며, 자양2교에서 상투바위골 방향(북쪽)으로 바라 봤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1148봉이고, 그 1148봉 정상이 <상투바위>다.
자양2교에서 바라본 1148봉(상투바위)
대부분의 등산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 제작
1/25,000 지형도,또는 1/50.000 지형도를
기본도로 하여 제작된다.
따라서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는 모든 지도
의 기초가 되는 셈이니, 좀더 확실성을 기하
기 위해, 1/5,000 지형도에 나타난 상투바위
골을 살펴 보자.
(참고: <국립지리원>은 2003년에
<국토지리정보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음.
지형도(종이지도)에는 1/5,000, 1/10,000,
1/25,000, 1/50,000, 1/250,000 다섯가지
종류가 있고,
등고선을 채색한 <음영지형도>는 1/25,000,
1/50,000 두 종류가 있고,
컴퓨터 그래픽 화일로는 <수치지형도>는
1/1,000, 1/5,000, 1/25,000, 1/250,000
4 종류가 판매된다.
지도한장 장의 단위를 <도엽>이라고 한다.
각 도엽에는 <도엽번호>와 <도엽명>이 있
으며, 전체 도엽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를 보여주는 <도엽인덱스>지도가 따로 있다.
설악산(남설악 포함, 설악산국립공원 전체
영역)의 경우에는1/5,000 지형도로 모두 갖
추려면 대략 90장 정도의 도엽이 필요하다.
밀촥취재 시리즈 끝부분에 내가 만든 설악산
도엽 색인지도를 부록으로 첨부할 계획.)
국토지리정보원 1/5,000 지형도 (도엽:설악55,56,57)를 세밀히 관찰해 보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논외로 다룬다.)
<상투바위>가 따로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위 지형도의 확대영역 중 노란색 채색 부분)
(3) "사람과山"이 만나면,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등산잡지가 2개 있다.
설악산 특집이 실리는 달이면 나는 어김없이 <월간山>을 샀고, 잡지 안에 들어 있던 설악산 등산지지도는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었다.
위 지도는 <사람과 山>이 1989년에 창간되서 첫 돌을 맞이하는 1990년 10월에 발행된 지도이다. 다른 지도와 몇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1) 장군바위골을 번쩍 들어다가 왼쪽 골짜기에 옮겨 놓았다. 요즘 모 대통령 경선 후보가 설레발치는 백두대간 끊어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 사업보다 더 찬란한 업적이다. <사람과山>이 만나니, 사람이 못하는 일이 없다. ㅠㅠ
(2) 귀때기청봉의 높이를 1577.6m에서 1580m로 둔갑을 시켜 놓았다. 그까짓 2m정도 올려 놓은 게 뭐가 대수냐고 할 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름없는 봉우리(무명봉)들은 자신들의 표고(標高)를 나타내는 수치가 바로 <이름표>가 되기 때문에, 비록
오차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명칭의 목적상 <일관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은 산악지도 전문가이신 "최선웅"씨께
서도 언급하신 바 있다. 하물며, 그 유명한 <귀때기청봉>의 잘 알려진 표고 1577.6m를 1578m로 표기하는 것은 무방하나, 10m 단위까지
반올림해서 1580m로 표기하는 것은 국토지리정보원의 표준 지도제작 규칙에도 어긋나는 상식을 벗어난 짓이다.
일관성 면에서 따져 보더라도, 동일한 지도 상에서 어떤 표고는 소수점 한자리로, 어떤 표고는 10m까지 반올림으로 표기하는 것은 지도
제작사 (매핑업체)의 명백한 잘못이다.
<중청>, <대청> 뿐이다. 특히, <대승령>과 <귀때기청봉> 사이에는 산행 시에 기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두개의 무명봉에 대한 표고가 대부분의 등산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데, <1289봉>과 <1408봉>이다.
그런데, <사람과山>의 지도에는 <1408봉>과 <귀때기청봉> 사이에 또 하나의 무명봉 표고가 추가로 표시되었는데, 소위 말하는 <1456봉>이다.
이 1456봉의 표고 수치는 그 출처가 어디인지 불분명하다. (국토지리연구원 1/5,000 지형도에는 1443.7m 표고로 표시되어 있고, 등산지도 제작
시에 기본도로 참조하였다는 1/50,000 지형도나, 1/25,000 지형도에는 1456봉에 해당하는 봉우리의 표고가 나와있지 않다.) 암튼, 언제부턴가
다른 등산 지도에도 1456봉은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데, 이제는 거의 1456봉으로 굳어진 상황이다.
(4) 성과심사필이 없는 무허가 지도이다. 모든 지도는 국토지리정보원 산하 <대한측량협회>로부터 성과심사필을 받아야 하는데, 이 지도는 심사
기본도를 참조하고, 현지 조사 등을 통해 등산과 관련된 여러가지 지리정보를 지도상에 표시하는 작업을 매핑(mapping)이라고 하며, 이러한
매핑작업은 전문적인 지도제작사를 통해서 한다. 사람과산 1990년 10월호에 첨부된 설악산 지도는 <산악문화>라는 곳에서 제작되었다.
매핑 전문업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비전문 업체에게 지도제작을 의뢰한 것도 문제지만, 대한측량협회 심사필도 받지 않은 사이비 지도를 무
단으로 발행한 <사람과山>은 발행사로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첫돌이 지난, 어린 아이가 저지른 실수라고 또 한번 너그러운 마음
으로 용서를 해주자.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사람과山>은 어떻게 변했을까?
창간후 10년이 지난 2000년도에,, <사람과山>은 <한국 100명산 등산지도집>을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사람과山>은 또 한번의 큰 역사를 이루어냈다.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다.)
가 아니다. <상투바위골>을 강제 이주시키고 나니, 그의 친자식 <상투바위>가 눈에 몹시 거슬렸는지, 비슷하게 생긴 옆 산꼭대기로
<상투바위>를 옮겨다 놓았다. 그래도, 뭔가 불안하고 성에 안찼는지, 옛날 상투바위 자리에 <1148봉>을 입주 시키고, 옛 상투바위골은
생판 처음 들어보는 <재량골>로 창씨 개명시켰다. 이제 세월만 지나면, 과거의 진실은 역사 속에 묻혀 사라질 것으로 믿으며, 새로운 식민
지 지도를 1/60,000 축척의 총천연색 특수 코팅지의 대형 지도로 인쇄를 해서 널리 보급했다.
자, 이제 간단히 정리해 보자. <상투바위>와 <상투바위골>이 옆 동네로 쫓겨가고,
<재량골>이라는 낯선 이방인이 새로 이주해와 정착하게 된 이 사건에 바로 <사람과山>이 깊숙히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사람과山>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연이 있을 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좀 더 근원적인 단초를 제공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법도 하니,
서북능선의 대표적인 표고점들의 개념도이다. 언젠가 저 무명봉들이 죄수번호같은 이름표를 떼어내고 예쁜 이름을 얻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어떤 문헌에도, 설악산 <재량골>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사람과山>
2003년 발행 설악산 등산지도에서 <재량골>을
처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비공식적으로는,
어떨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수집한 <재량골>
에 관한 정보를 분석, 종합해 보면,
(1)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소위 <안내산행팀>
들이 <재량골>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
(2)<무명암릉>,<삼지바위길>,<1148릿지>리지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재량골>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
(재량밭 옛 화전민터)
이 두가지 사실이 명백하게 관찰된다. 일반 등산객들은 대부분 등산지도(사람과山 발행지도는 제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상투바위골을 상투바위골로 알고
있으나, (안내산행팀들도 상투바위골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분명하고 뚜렷한 현상은, 리지등반을 하시는 분덜은 거의 예외없이, 상투바위골을 <재량골>로 알고 있다는 것.
새 집에 새 문패를 달아 주는 일은 즐거운 일이지만, 멀쩡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문패를 떼어 내어 옆 집에 옮겨 달아 놓고,
남의 집에 새 문패를 함부로 다는 것은 장난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고....뭘까.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왜 생겼을까?...하는 의문을 품다 보면, 다음과 같은 가설이 세워지기 마련이다.
(1) 맨 처음 재량골 3개 리지길을 개척한 팀들의 착오 (상투바위골의 위치를 잘못 인식)
(2) 새롭게 개척된 재량골 3개 리지길을 널리 소개하는 과정에서 출판물의 오류
이 두가지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데... 가설의 증명을 위해 좀 더 추적해 들어가 보자.
(1) 재량골 3개 리지길은 언제 누가 맨처음 <개척>했을까? [정답] 1148리지 - 1995년, <하이얀산악회> www.haiyan.com 삼지바위길 - 1994년, <하이얀산악회> www.haiyan.com 무명암릉 - 1993년, <돌비알산악회> http://cafe.daum.net/mt8848 |
(2) 재량골 3개 리지길은 언제 누가 맨처음 <소개>했을까? [정답] 1148리지 - 1996년 9월, <사람과山> www.mountainkorea.com 삼지바위길 - 1994년 11월, <사람과山> www.mountainkorea.com 무명암릉 - 1994년 8월, <월간山> http://san.chosun.com |
(3) <재량골>이라는 단어는 어느 출판물에서 젤 먼저 사용했을까? [정답] 사람과山 , 1996년 9월호 <설악산1148리지> 특집에서 처음 사용. |
[사람과山]
0110 | 98.12 | 189 | 책속의부록/ 설악산의 리지(하)-1148리지 | 김기섭 |
0110 | 98.12 | 190 | 1148리지 개념도 | |
0083 | 96.09 | 112 | 암릉등반특집2/ 고급자를 위한암릉르포-설악산1148리지 | 민병준 |
0083 | 96.09 | 117 | 1148리지 위치도 | |
0083 | 96.09 | 118 | 1148리지 개념도 | |
0083 | 96.09 | 119 | 1148리지 길잡이/재량골에서 접근해 시작하고 1박2일이 |
0110 | 98.12 | 187 | 책속의부록/ 설악산의 리지(하)-삼지바위길 | 김기섭 |
0110 | 98.12 | 188 | 삼지바위길 개념도 | |
0061 | 94.11 | 62 | 발굴취재/ 설악산 삼지바위길 첫공개 | 민병준 |
0110 | 98.12 | 186 | 책속의부록/ 설악산의 리지(하)-무명암릉 | 김기섭 |
0110 | 98.12 | 186 | 무명암릉 개념도 |
[월간山]
0353 | 99.03 | 144 | 설악산국립공원9/ 암릉루트(서북릉무명암릉) | 김용기 |
0298 | 94.08 | 130 | 새암릉코스/ 설악산 무명암릉-서북릉으로 이어진 11개 | 한필석 |
소위 <재량골> 일대에서 처음 개척된 암벽리지는 <무명암릉>인데,
93년에 <돌비알산악회>가 <무명암릉>을 개척해서, <월간山> 94년 8월호에 소개하였고...
그리고, 연이어...
94년에 <하이얀산악회>가 <삼지바위길>을 개척해서, <사람과山> 94년 11월호에 소개하였고,
95년에 <하이얀산악회>가 <1148리지>를 개척해서, <사람과山> 96년 9월호에 소개하였다는 말임시...
엑? 그럼, <사람과山>보다 <월간山>이 먼저 그 동네를 소개했다는 말인데, 그럼, 혹시 진범은 <월간山>일지도?.....
창간된지 얼마 되지 않는 풋내기 <사람과山>은 단지 <월간山>의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이어 받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의문의 해답은 결국,<월간山> 1994년 8월호 특집 "새암릉코스/ 설악산 무명암릉" 기사 에 결정적인 단서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근데, 12년도 넘은 이 잡지의 기사를 어디가서 찾는담? (밀촥취재는 여기서 끝?.걱정마시라. 조만간 이 기사의 원본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그 때까지는, 당장 (엉덩이)밀착으로 디벼볼 수 있는 데까지만 디벼 보기로 하자.<돌비알산악회 공식카페> (http://cafe.daum.net/mt8848)에 가보면..
돌비알 산악회 연혁
(중략)
1993년 7월 - 설악산 무명릿지 코스개척작업
1994년 7월 - 설악산 무명릿지 취재보고.......
그니까, 돌비알산악회에서 94년 7월에 무명암릉 취재보고를 했고, 94년 8월호 <월간山>에 소개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재량골>의 탄생 기원을 찾기 위한 수사망은 대폭 압축되었다.
(1) 돌비알산악회 <무명암릉 취재보고서>
(2) <월간山> 94년 8월호 (무명암릉)
(3) <사람과山> 94년 11월호 (삼지바위길)
(4) <사람과山> 96년 9월호 (1148리지)
이 과정 중, 어느 한 단계에서 <재량골>이 탄생했음이 분명해 지는 것이다.
(자료를 입수하기 전까지) 이를 추정해 볼만한 단서 한가지를 인터넷으로부터 찾아 낼 수 있었다.
출처 불명의 지도 두장을 함 살펴보자.
(월간 山, 94년 8월호 <무명암릉> 개척 보고서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사람과山, 94년 11월호 <삼지바위길> 소개 기사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이들 지도의 출처는 어디일까? 혹시, <월간山> 94년 8월호 <무명암릉> 첫 소개 기사에 기재된 지도 아닐까?
[관찰1] <장군바위골>과 <상투바위골>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와 일치한다)
자, 다음으로 <삼지바위길 위치도>를 살펴보자.
위 두개의 지도가 모두 <지성선도>로서 표현 방법이 같고, 그 품질(?)이 비슷해서, 얼핏보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참조하여 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관찰1] <재량골>이라는 계곡명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관찰2] <상투바위골>은 오른쪽 계곡으로 이사갔다. (상투바위골 오류)
[관찰3] <상투바위>는 <무명암릉 위치도>에 이어서 한번 더 이사갔다. (상투바위 오류)
[관찰4] 재량골 (원래 상투바위골)의 우골 지류가 사라지고, 좌골 지류가 표시되었다. (삼지바위길 접근로가 그쪽에 있기 때문?)
[관찰5] 새로 설치(?)한 상투바위골의 오른쪽 지류가 사라짐. (무명암릉 위치도에는 표시되어 있던)
[관찰6] 무명봉 표고 <1148>, <844>, <896>이 등장함.
[관찰6]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백두대간 표시
[관찰7] <재량밭>, <장군바위>는 표시되어 있음
[관찰8] <무명용사충혼비> 도로표지판 위치 사라짐.
[관찰9] 귀때기청봉의 철자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처럼 <귀떼기청>으로 잘못 표기되었음. (귀때기청봉 철자오류)
두 지도의 관찰결과,
(1) <무명암릉>이 소개될 당시만 해도, <재량밭>은 있을지언정 <재량골>은 나타나지 않았다.
(2) <삼지바위길>이 소개되면서 <상투바위골>이 이사가고, <재량골>이 탄생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만일 그렇다면, <하이얀산악회>나 <사람과山>은 왜, <삼지바위길>을 소개하기 위해 <재량골>의 탄생을 필요로 했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 밖에 있을 수 없겠다.
<삼지바위길>의 들머리로 들어가는 계곡이 <상투바위골>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굳이 새로운 계곡명을 도입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상투바위골> 옆 계곡을 <상투바위골>로 착각을 했고, 따라서 <장군바위골>과 <상투바위골> 사이에 위치한 이름없는 무명계곡에 이름을
붙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름을 뭐라고 붙이는 게 좋을까?
리지하시는 분들은 리지 작명은 쉽게 잘 하시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편리한 규칙으로...
(1) 접근로 들머리에 분명한 이정표가 있을 경우 그 이정표 이름을 붙인다. (<무명용사비충혼비>에서 <무명암릉> 유래)
(2) 리지상에 나타나는 모양이 특이하게 생긴 바위. (<삼지바위>에서 <삼지바위길> 유래)
(3) 리지가 시작되는 첫 봉우리(P1)의 표고. (<1148봉>에서 <1148리지> 유래)
근데, 계곡이름이나, 폭포이름을 작명하시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
(지금까지도 재량골에 있다는 3개의 폭포를 그냥 제1폭, 제2폭, 제3폭으로 부른다. 군대처럼....ㅠㅠ)
<리지>는 어차피 전통적으로 없는 개념이니, 개척한 분들이 맘대로 이름을 붙여도 되겠지만, (독립적인 Name Space)
계곡이름과 같은 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지역문화로부터 유래되는 것이니만큼 함부로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암튼, 계곡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정표를 찾자니,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재량밭>이었을게다.
<재량밭> → <재량밭>을 들머리로 들어가는 계곡 → <재량밭골> → <재량골>
이렇게 해서, <재량골>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44번 국도 (한계령길)을 가다 보면, 재량밭을 지나 골짜기 하나를 건너는 다리 이름이 <자양2교>라는 것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들은 아마도 지금의
<재량골>을 <자양2골>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와 분석 결과로 추정하건대 (결정적인 증거는 <월간山> 94년 8월호
<무명암릉 첫소개> 기사가 입수되면 제출하겠다. 그 전까지는 <사람과山> 또는 <하이얀산악회>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결론을 내리자.
<재량밭>은 있으나 <재량골>은 없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상투바위골>에게 고향을 돌려 주자. <자양2교>로 흘러내리는 골짜기는 분명 <상투바위골>이다.
다음 편에서는 새 이름을 짓더라도, <재량골>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디벼주겠다. 여전히....<상투바위>는 어디서 방황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5) - 재량밭 이야기
처음으로 상투바위골 산행을 준비하던 그때,
상투바위골 들머리를 잡기 위해 1/5,000 지형도를 보다가
<재량밭>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났다.
<재량밭>....
한계령을 넘어가는 이 좁은 협곡에 무슨 "밭"이 있었을까.
암튼, <재량밭>이라는 유적지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표지판에 <재량밭 입구>라고 씌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무명용사충혼비> 입구와 상투바위 골짜기를 건너는 44번
국도 상의 다리의 중간쯤으로 들머리 위치를 가늠 잡았다.
그런데, 그 다리 이름을 몰라서 (1/5,000 지형도에도,
1/25,000 지형도에도, 등산지도에도 없다) 결국은 현장에서
확인했는데, 그 다리 이름은 <자양2교>였다.
<재량밭>과 <자양교>....
<재량>과 <자양>....
발음도 비슷해서, 혹시라도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우연히 읽게 된 <옛길 걸어넘기,
한계령> (사람과山 2001년 8월호)이라는 글에서,
<재량>과 <자양>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장수대>
의 옛 이름이 <자양전(紫陽田)>이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자양전>을 <자양밭>,<재량밭>,<재롱밭>
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자양>=<재량>이 되는 셈이다.
<사람과山>의 <옛길 걸어넘기> 특집 르뽀는 이 사실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자! 이제, <재량밭> 명칭에
대한 공식적 확인에 들어가 보자.
(1)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서비스)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에 가보면 <지명서비스>라는 게 있다. 이 곳에서 <재량밭>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지명임이 확인된다.
(2)인제군 홈페이지 <지명유래>
인제군의 홈페이지 <지명유래> 코너에서는 <재량밭>은 나타나지 않지만, <장수대>=<자양전>=<자양밭>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한계천을 건넌 지 1시간 쯤 걸었을 무렵 무너진 콘크리트 다리가 나오는데 이 곳이 <상투바위골>.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 위로 보이는 44번 국도로 올라서게 된다.
국도에 올라서면 버스 한 대가 주차할 만한 공간이 있는데 <상투바위골>로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주차장으로 애용하는 곳이다."
이게 제대로 말해 놓고 (여기서 다리는 <자양2교>임에 분명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취재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작, 답사지도를 그려 넣을 때는 <상투바위골>이 또 옆동네로 이사간다. ㅠㅠ (으으...)렇
다른 하나는, <자양천>을 <한계천>으로 표시한 것이다. 어떤 지도에는 <한계천>=<자양천>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으나, 한계천 상류, 즉 장수대(자양전,
① 문서에서는 <자양전(紫陽田)>으로 적었고, (기사에는 紫楊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좋은 햇볕의 뜻이라면 陽자를 쓰는 것이 맞다)
② 그 의미는 <햇볕이 좋은 곳>이라는 뜻이며,
③ 부를 때는 <재롱밭>이라고 불렀다. (재량밭을 쉽게 기억하고, 발음하기 위해서 그랬나보다)
④ 꽤 넓어서 <윗재롱밭>과 <아래재롱밭>으로 나누어서 불렀다
이와같은 사실을 증언해 주셨다. 자, 이제..... 이 정도면 <재량밭>의 비밀은 거의 드러난 것 같다.
종합해야 할 시간이다.
국토지리정보원 1/5,000 지형도에 보면, <자양1교>와 <자양2교> 사이에 재량밭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6)상투바위를 찾아서 - <월간山>은 무죄다!
지난 번, <상투바위를 찾아서 (4) - 재량골은 없다> 편에서
무명암릉 (93년 돌비알산악회 개척) --> <월간山> 94.8월호에 소개
삼지바위길 (94년 하이얀산악회 개척) --> <사람과山> 94.11월호에 소개
1148리지길 (95년 하이얀산악회 개척) --> <사람과山> 96.9월호에 소개 라는 결정적 단서를 찾아서 소개한 바 있다.
따라서 <상투바위골>을 이사보내고, <재량골>을 탄생시킨 최초의 범인이 누굴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의 가능성은 두가지.
(1) 최초로 무명암릉을 소개한 <월간山>의 오류
(2) <월간山>은 제대로 전했으나, 이어서 <삼지바위길>, <1148리지>를 소개한 <사람과山>의 오류
이 두가지 가능성을 놓고 봤을때 그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 증거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입수한, <출처불명>의 지도 두 장이었다.
(1) 무명암릉 위치도 (상투바위 오류)
(2) 삼지바위길 위치도 (상투바위, 상투바위골 오류, 재량골 탄생)
나는 이 지도의 내용을 정밀 분석한 결과,"....저 출처 불명의 지도들이 독립적으로 제작된 <등산지도>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 아니고,
등산잡지에서 스캐닝한 것이라면, <월간山> 또는 <사람과山>에서 재량골을 처음 등장시킨 그 문제의 지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략)...따라서, 이들 두 지도는 재량골 3개 리지코스가 개척되었던 매우 <초기>단계의 지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명암릉 개척산행, <월간山> 취재팀은 책상 머리에 앉아 <돌비알 산악회>의 <개척산행 보고서>나 뒤적이면서...
나처럼 <(엉덩이)밀촥취재>를 했던 게 아니었다.
사진기자까지 3명의 취재팀이 실제로 개척등반에 참여했고, 세세한 등반과정과 에피소드까지 소개할 정도로 충실한 취재를 했다.
독자로서, 이와같이 전문성을 갖춘 완성도 높은 취재를 한, 한필석 기자와 정정현 기자 등 <월간山> 취재팀에게 감사드리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윌간山> 취재 내용은, 내가 아무리 돋보기를 들이밀고 조그만 오류라도 찾아 보려고 했지만 <완벽하게>도..... 오류는 없었다.
단, 한번도 <재량골>이라는 단어는 나타나지 않으며, <상투바위골>의 위치, <자양천>의 위치,<장군바위>와 <장군바위골>의 위치,
<재량밭> = <자양전(紫陽田)>이라는 사실까지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다른 자료에서는 한번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무명암릉>과 <상투바위골>에 관한 에피소드 한 가지를...<돌비알산악회> 박태원 회장이 들려 준다.
"상투바위골 동쪽에 뻗어 있는 암릉 (1148리지, 이때만 해도 개척되지 않은 상태)를 개척하려던 것이,
<상투바위골> 초입에서 길을 잘못 들어, <무명암릉>을 개척하게된 것"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캬~...... 맞오, 맞오....그 사정 내가 알쥐
내가 바로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ㅠㅠ (어쩜 이런 반가운 우연이.....)
2003년이던가....처음으로 상투바위골에 가 보았다.
들머리를 <무명용사충혼비>로 잡고 올랐다가, "어? 여기가 아닌가벼? 나는 계곡 산행을 왔는데, 어쩌다 리지를 하고 있능겨? 으으..ㅠㅠ"
그래서, 할 수 없이 계곡을 향해 떨어지는 급사면을 타고 무작정 내려왔는데, 그 곳이 <상투바위골> 하단 폭포였다.
본의 아니게 타고 올랐던 무명암릉 능선상에서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찍어 뒀던 상투바위(1148리지)와 장군바위(무명암릉) 사진이다.
기왕 이렇게 된거, 그 때 사진이나 함께 감상하고 넘어가자.
<상투바위와 1148리지>
<장군바위와 무명암릉>
[무명암릉 길잡이] 코너에서도, 지명을 사용함에 있어서 <월간山>은 조그만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짝짝!)
게다가, 더 반가운 것은....[무명암릉 등반루트 개념도]와 함께 실린 [무명암릉 위치도]이다.
지난 번 글에서도, 이 출처불명의 위치도가 아마도 <월간山>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했었는데,
이제 그 추정이 분명한 사실로서 확인되었다. 울나라 최초의 [설악산 무명암릉 위치도, 등반루트 개념도]는 바로 <월간山>이 만든 것이다.
다시 한번 그 지도를 살펴보자. 위 특집 기사에서,<월간山>이 범한 딱! 한가지 오류가 있다면,
바로 이 위치도 상에서 <상투바위>의 위치를 잘 못 표시했다.(빨간 색으로 정정한 부분) 자!! 이제 속이 다 후련하다.
울나라에서 <재량골>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고, <상투바위골>을 강제이주시켜,설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조낸 헤깔리게 한 흉악한(?)
진범은....<월간山>이 아니라, <사람과山>이다.(하이얀산악회도 공범 용의자) 고로, <월간山>의 무죄를 선고하는 바이다! (쾅! 쾅! 딱....?...)
그나저나....<상투바위>는 어디가서 찾는담? (스켈퍼님 올때까정 기다리는 게 빠를까?...흠흠...)
(7)상투바위를 찾아서 - 누가 상투바위를 보셨나요.....
< 사진출처: 스켈퍼님, 설악산탐방이야기(1148봉 탐사2) >
<상투바위골>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으나,
<재량골>에 쫓겨 옆 계곡으로 피난 나올 때, 함께 쫓겨 났던 <상투바위>를 찾아내어 그 넘을 다시 옛집에 데려다 주려니...
그 넘 살던 옛집 주소에 아리송한 문제가 나타난다.
<문제의식>이란 넘은,
남들이 발견 못한 문제를 신통하게 찾아내는 재주도 있지만, 가끔은 문제가 아닌 것도 심각한 문제로 리모델링 해내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암튼, <상투바위골>이 정확하게 표시된 대부분의 등산 지도는, <1148봉>을 <상투바위>가 살았던 동네로 표시하고 있다.
등산지도에 나타나는 <상투바위골>과 <상투바위>
옛말에 <식자우(황청심)환>이라고.... (한자로는 못쓴다. ㅠㅠ) 그냥, 그런가부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문제인데,
1148봉의 정확한 표고점을 확인해 보려고, 국토지리정보원 1/5,000 지형도를 디비던 와중에,
그만.... 1148봉 (1/5,000상의 표고점은 1139.7) 옆에 <상투바위>라고 조그맣게 씌여진 글씨를 보고야 말았다. ㅠㅠ
근데, 그 <상투바위>라는 글씨 옆에.....뭔가 조그만 바위 표시 그림이 있지 않은가....그러니 다음 수순은 당근 "아!.....
1148봉 자체가 상투바위가 아니고, 뭔가 진짜 상투처럼 생긴 어떤 바위가 따로 있나부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별로 돈 될거 같지도 않은,
대단한 발견으로 머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혹시..바위표시가 아니고,<방사능위험물질> 표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상투바위골>은 사실상 "쫓겨난" 게 아니고, 삼지바위 리지를 개척한 하이얀산악회 (또는 이를 소개한 사람과山 잡지)의 개척팀들이
옆 계곡을 <상투바위골>로 착각한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개척하고자 했던 삼지바위길이 있는 계곡은 졸지에 무명계곡이 된 것.
이름이 무엇인지 그들에겐 별 상관없던 한 계곡이, 새로 개척된 삼지바위길의 들머리로 삼아야하는 계곡인 만큼, 반드시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근방의 표지(landmark)를 찾아 보니 "재량밭"이 있었던 것.
증언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의 한계령길(44번 국도)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원통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길은 지금의 한계령보다는 오히려, 미시령을 더 많이 이용했다고 하지만,
한계리 사람들은 주로 한계령을 넘어서 양양으로 갔다고 한다.
(8)상투바위를 찾아서 - 1146봉의 정체 !
<자양2교 난간에서 바라본 상투바위골 입구와 1148봉>
상투바위가 자양2교 가까이 어디엔가 있는 조그만 바위라도 좋겠지만,
다는 말이다. 높은 곳에 있고, 크기도 커서....계곡 안 어디에서라도 보이는 바위면 제일 좋겠지만,
<스켈퍼님의 설악산 탐방이야기>
상투바위를 찾아서 / 1148봉 탐사산행 / 1148봉 탐사산행 (1) / 1148봉 탐사산행 (2) / 1148봉 탐사산행 (3)
위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기 전에, 제일 중요한 용의자들의 얼굴 사진을 분석해 보자.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며 "상투를 닮았다"고 하는데.....
"상투"? 글쎄.....갑자기 "상투"의 상세한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니...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해서, 사료에 근거하여 비교적 공신력있게 '상투'에 대해서 연구한 바 있는
<한국문화콘텐츠연구원>에서 복원한 상투의 모습과.....상투 전속 모델 <상투맨>씨를 초빙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복원한 상투 (모델: 상투맨)
http://hair.culturecontent.com/hairstyle/hairstyle_chosun_09.asp
우쒸....몽타쥬를 만들어 놓고, 유심히 넘들의 얼굴을 쳐다보니....범인 같기도하고.......아닌 거 같기도 하고....... 더 헤깔린다.
자! 이 넘의 몽타쥬를 만들어 보자.
배부같은 벗님들은 그래서 "버섯" 쪽으로 연상을 하셨나 보다. 근데, 이 넘을 찬찬히 뜯어 보니... 상투 바위가 되어 내게 날아오지 않는가!
계곡을 내려 가시는 분덜은 뒤돌아 보지 않는 이상, 이 특이한 모양의 바위를 놓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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