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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서

[동양화로 보는 중국 명산] 화산, 항산

by 청아 김종만 2009. 7. 2.
[동양화로 보는 중국 명산] 화산
 
저 산 그대로 봉황의 날갯짓이자 용의 승천 38개 암봉으로 승경 이룬 도교 발상지 5대 명봉 답파

중국인들의 산악신앙의 대상이 된 5악 중 산세가 가장 뛰어난 산이 화산이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은 웅기험준(雄奇險峻)하여 지난 수 세기동안 무수한 침략자들로부터 장안을 지켜낸 일등공신이며, 대황하의 물줄기마저

바꾸어 버린 산이다. 화산은 산세가 워낙 험해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기 때문에 무협지의 주무대가 되었으며, 무림고수들의

마지막 결투가 이곳 화산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화산론검(華山論劍)이라는 말이 나왔다.

 
▲ 화산과 황하.
또한 화산은 도교(道敎)의 발상지이자 진흥지로도 유명하다. 현재도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관(道觀)이 있으며, 양귀비가
양태진(楊太眞)이란 도호(道號)를 가지고 여도사 생활을 한 곳도 이곳이다. 다른 명산들은 도교의 도관과 불교의 사찰이 혼재
되어 있지만, 화산은 유일하게 불교사찰은 전혀 없고 도교의 도관만 존재한다.

화산은 섬서성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크고 작은 봉우리가 38개나 솟아 있다. 이중에 높은 5개
봉우리(落雁峰, 朝陽峰, 蓮花峰, 云臺峰, 玉女峰)를 지나는 것이 주요 산행로다. 산 전체가 험준한 화강암봉군으로 이루어져
있어 클라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하다. 이 웅장한 화산을 보고 나면 여백 없이 하늘 끝까지 채우는 중국 산수화
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서안은 전시 관계로 자주 찾는 곳이 되어 낯설지 않다. 그래서 혼자 배낭을 메고 선뜻 나서 보았다. 오늘 따라 잔뜩
흐린 날씨에 방금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다. 서안은 연평균 강우량이 600mm라고 하니 비가 귀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손님이 비를 몰고 오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옛말이 있다. 서안공항에 도착하니 환영 나온 일행들이 “5일 전
부터 봄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으나 아직까지 비가 오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오시니 금방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다”고
하며 한바탕 웃음으로 반긴다.


무림고수들이 혈투 벌인 화산 북봉

다음날 아침 호텔 앞에 도착한 류진생(劉秦生) 경리의 차는 간밤에 내린 비로 도화꽃잎을 뒤집어쓰고 있다. 류 경리 부부와
는 섬서미술관 진현 관장을 통하여 알게 된 뒤 10여 년 가까이 지내다보니 이제는 친분이 두터운 친구가 되었다.
미술관 전속 가이드인 최경화(崔京花)씨까지 함께 오전 9시 화산으로 출발했다.
 
▲ 영객송과 남천문.
화산 입구에 도착, 화산 전용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심산유곡을 찾아든다. 차창 밖으로 아무리 고개를 빼고 위를
쳐다봐도 끝없이 높은 산정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인적 하나 없는 협곡을 30여 분 달려 삭도(케이블카)정류장에 도착,
물건 파는 소리로 왁자지껄한 가운데 일단 삭도를 타고 북봉으로 오른다.

北峯頂(북봉정)이라 새겨진 패방(牌坊)을 통과하여 운대산장에 여장을 풀고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쳤다. 최경화씨는 고소
공포증이 심하여 산행을 포기하고, 류 경리 부부만 함께 북봉으로 오른다. 운무로 인하여 북봉의 비경을 확연히 조망할 수는
없지만 잠깐씩 드러낸 북봉의 위용에 이백, 이상은, 백거이, 관회 같은 장안에서 이름난 시인들이 화산을 노래한 시심을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三峰却立如欲    세봉우리 우뚝, 꺾고 싶어라

翠崖丹谷高掌開 푸른 절벽 붉은 계곡 높이 손 벌려 펼치네.
白帝金精運元氣 서쪽의 쇠 기운은 천지 원기를 돌려
石作蓮花云作臺 돌로 만든 연꽃 구름봉우리 짓네.

이백이 북봉에 올라 남긴 싯귀다.
북봉 정상에 오르니 운집한 군중 속에 ‘華山北峰’(1,614.7m) 표지석이 반긴다. 바로 그 옆에 ‘華山論劍(화산론검)’이라 새겨진
키보다 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무림고수들이 혈투를 벌인 곳이라고 한다. 북봉은 삼면이 천길 낭떠러지이므로 길은 외길,
최후의 승자만이 올라온 길을 내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뿌연 안개 구름 속에서 칼바람 같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북봉에서 내려
섰다.
 

 

 

▲ 운대산장과 북봉.
이제부터는 화산에서 제일 소문난 험도, 푸른 용의 등을 닮았다는 창룡령(蒼龍嶺)을 오른다. 정말 아차 실수라도 하면 시신은
찾을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쇠줄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오르는데 계단을 내려가던  두 아가씨가 아예 주저앉아
소리를 내어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체면을 따질 겨를도 없나 보다. 오를 때는 멋모르고 따라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이 천길
낭떠러지로 보여 금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더욱 공포감이 드는 모양이다.

창룡령을 오르며 등골에 땀을 오싹 빼고 나니 오운정이다. 이제는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시력만큼 멀리 보인다. 조금 전에 구름
속에 가린 북봉은 이제는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돌아 운대봉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석도의 기운 생동하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석도는 말하기를 ‘그림이라는 것은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의 큰 법
이요, 산천의 모습과 기운의 정의로운 피어남이요, 예부터 지금까지 천지를 창생하는 기의 조화요, 음양기상의 큰 흐름이다.
붓과 먹을 빌어 천지만물을 화면으로 옮기면서 그 천지만물이 나라고 하는 존재 속에서 생성되고 노닐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 명은 내게 있지, 하늘에 있지 않다’

오운정 폐방을 지나 오운봉 빈관에 오르니 피리 부는 짐꾼아저씨가 미소로 반긴다. 얼굴 표정이 참으로 맑다. 바지를 반쯤 걷어
올린 종아리에는 힘든 세월만큼 굵은 힘줄이 튀어 나왔다. 육체적 고통을 괴로워하기보다는 이곳의 삶을 즐기는 진정한 도인 같다.
안개 속에 아스라이 비친 노송 너머로 흑백의 서봉(西峰)이 우뚝하니 화산의 정기가 가슴속을 파고든다. 이렇듯이 산은 일기가
불안정할 때 오르면 위험도 따르지만 예상 못했던 희열을 맛볼 수도 있다.
 
▲ 화산선장(華山仙掌)의 운해.
금쇄관으로 조금 올라 쉼터에서 바라본 운해속의 거대한 암봉들은 하엽준법을 응용한 만장의 산수화 같아 가슴속 심장은 더욱
세차게 피를 뿜어낸다. 보라, 대해의 저 연봉들을. 봉황의 날갯짓이며, 창용의 화려한 승천이니. 설경에 더욱 검게 보이는 천년
노송은 손을 들어 이별을 아쉬워하는데, 놀란 까마귀는 깊은 계곡이 떠나갈듯 울어댄다. 류 경리도 서봉의 웅장한 자태와 시시
각각으로 변하는 운해 위의 연봉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부인 채 경리는 실눈을 뜨고 절경에 흠뻑 취했다.

금쇄관 주위에는 수많은 열쇠꾸러미와 붉은 댕기가 바람에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다. 금쇄관에서 조금 더 오르니 지난밤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은백의 세계를 이룬다. 산 아래는 도화꽃이 만발하거늘.

십팔담교(十八潭橋)와 진악궁이 있는 서봉으로 가는데 수령 천 년이 된 화산대장군 소나무가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다.
‘靑杆(청간)’으로 표기되어 있는 1급 보호수다.
 
▲ 계자번신(병아리 날아오르다).
화산에서 가장 큰 도관인 서봉 취운궁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상투를 올린 도사를 바라본다. 검정 도사복에 상투를 틀어올린
모습에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도사의 얼굴이 참으로 천진스럽고 욕심 없어 보인다. 도교에서 머리를 틀어 올리는 이유는 범인의
삶의 방향과 역행해 하늘을 향해 올라가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라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식 낳고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이 순행(順行)이라면 선도의 수련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가 수행자들은 말하기를,‘아명재아불유천’(我命在我不由天) 즉, 내 명은 내게 있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취운궁을 벗어나 서봉 정상 연화봉(2,038m)을 오른다. 서봉 정상은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 있어 수많은 시인묵객이 풍류를 즐길
만한 곳이고 좌선하기에도 좋다. 바위 위에서 기도를 올리면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도
처는 바위가 있는 산이다. 어지럽게 씌인 대형 글씨들은 하나같이 녹색이다. 이곳에 서면 위하가 발아래 보인다고 하나 오늘은
심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너럭바위 중앙 바위틈에는 수령 300년 된 회수송(回首松)이 외로운 도인처럼 서 있다.
 
▲ 남봉에서 바라본 첨봉.
구름과 산릉들의 변화무쌍한 조화를 바라보며 남봉으로 향한다. 남봉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 옆 단애에 선 노송이 동양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연급 소나무처럼 고풍적이다.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땀을 흠뻑 흘리며 봉일송(捧日松)을 지나 힘들게 계단을 올라 오후 5시가 되어 남봉 정상에 도착했다. 화산 최고봉 남봉(2,160m)
은 기러기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낙안봉(落雁峰)이라고도 한다. 정상에는 화강암 자연석으로 된 표지석 바로 옆에
어천지(御天池)가 있다. 복을 빌며 던져 놓은 돈을 검정도복을 입은 도인이 낚시질하고 있다. 도인은 물에 젖은 1원짜리 지폐를
조심스럽게 편다.
 
너무도 아름다워 붓을 꺾고 싶은 풍경 만나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화산의 운기(雲氣)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래서 화산은 중국의 수많은 시인과 화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산수화가이자 이론가인 곽희는 여행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사람인데, “동양의 산수는 결코 하나의
산, 하나의 사물을 사실에 가깝게 모방하려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산수를 경험하고 미적 관조가 가능한 이상적인 산수로서 창조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새로운 산수를 독창적으로 창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저 그대로만 그린다면
지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 창룡령과 서봉.
나는 지금 선경에 드는 듯한 심경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스스로 도인이 된다. 적어도 지금은 붓을 꺾고 싶다. 자연을
화폭에 담는다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남천문으로 향했다. 거대한 돌계단을 내려서니 남천문 도관이다. 문을 들어서니 장공잔도(長空棧道)의 모험
적인 사진들이 걸려 있으며 ‘華山第一險道, 全眞崖’(화산제일험도, 전진애)라고 표기되어 있다.
종루 옆 석문을 통과하니 장공잔도가 나온다. 나도 모르게 벽에 붙은 쇠고랑을 꼭 붙잡고 있다. 엉금엉금 쇠줄을 붙잡고 거인의
불룩 나온 배 같은 암벽을 돈다.

끝이 안보이는 천길 직벽에 커다란 석굴로 된 대조원동(大朝元洞) 도관이 있다. 촬영을 하려니 도사가 손짓으로 거부한다.
동봉으로 오르는 길은 울창한 송림 숲길이다.
 
▲ 백운봉과 운해.
사색하는 마음으로 숲길을 조금 걸으니 동봉빈관 현판이 보이는 바로 아래 360년이 되었다는 화산 영객송이 반긴다.
황산의 1,200년 되었다는 영객송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태와 기세가 당당하며 너럭바위에 조망 좋은 곳에서 신선들의 벗이
될 법도 하다. 이곳에서 바라본 영객송과 어우러진 남천문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다.

동봉 정상(朝陽峰ㆍ2,100m)에 올라 ‘계자번신(鷄子  身)’의 기정(棋亭)을 바라본다. 주위에 기석선경이 얼마나 웅위로우면 저
높은 봉마저 병아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에 비유하였을까. 그곳에서 신선들의 바둑 두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 암봉 위 정자
에서 북송 초기에 120년을 살았다는 수공(睡功)으로 유명한 진희이(陳希夷)와 송나라 태조인 조광윤이 내기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진희이가 그 바둑에서 이긴 댓가로 화산은 정부로부터 세금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세금을 면제 받으면서 화산은 도교
만의 성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서봉을 오르며.
이후 화산은 중국 북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도 매년 화산바둑대회를 열고 있으며 조훈현 9단과, 김용(金庸·염황배 바둑대회 창시자)도 화산에 올라 네워이핑 9단과
대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케치를 마치고 직벽 철난간을 붙들고 운제를 내려서서 중봉으로, 또다시 중봉에서 금쇄관을 거쳐 운대산장에 도착하니 사방이
어두워졌다. 화산의 ‘秀而雄’(수이웅·수려하고 웅장함)과 ‘雲捲天睛’(운권천정·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개임), 그리고 강한 원기
(元氣)를 10년 우정의 지극한 마음들과 함께 온몸에 채운 듯하다. 다음날 우리는 드넓은 황하대교를 건너 화산을 뒤로하고 오악의
마지막 코스인 북악 항산으로 향했다.
 
[동양화로 보는 중국 명산] 4 항산
 
“바위가 중첩만장(重疊萬丈)이고 괴이함을 알 수 없구나”
현공사~항산산문~관제묘~북악대문~침궁~항산산문 일주기
 

변방 척박하고 버려진 땅 황토고원에 우뚝 솟은 항산은 산서성(山西省) 훈원(渾源)현에 자리하고 있다.

주봉인 천봉령(川峰   )은 해발 2,017m로 변방 제일의 산이라 불린다. 당대 시인 가도는 이르기를 “천지에 오악이

있거늘 항악이 북쪽에 위치해 있도다. 바위가 중첩만장(重疊萬丈)이고 괴이함을 알 수 없구나”라고 항산의 예측할

수 없는 기세를 잘 말해주고 있다.

 
▲ 도사의 독행.

항산은 웅장하고 험난한 산세가 연달아 기복을 이루며 동서로 250km를 달린다. 또한 108봉이 무리지어 있어 항산산맥

이라고도 한다. 항산은 가까이에 운강석굴이 있으며, 오대산이 있다. 또한 웅준한 암봉은 구름 속을 찌르고 금용협, 해협

사이로 물이 흘러 산골짜기는 고요하고 깊으니 이곳이 신선들만 산다는 선유동임을 말해준다.


전한(前漢) 문제(文帝)의 이름 유항(劉恒)을 피휘(避諱)해 상산(常山)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동쪽은 태행(太行)산맥과 오대(五臺)산맥, 서쪽과 남쪽은 황하 중류의 협곡, 북쪽은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각각

하북·하남·섬서와 내몽고자치구와 접하고 있다.


중국의 수많은 산을 대표하는 5악은 한나라 선제(宣帝)가 정한 것으로 지금까지 내려오며, 중국 5대 명산의 총칭이기도

하다. 5악을 신선이 거처하는 곳이라 믿어 고대 제왕들은 5악을 찾아 제를 올리며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기원했다.

당 현종(玄宗)은 5악을 왕에 봉했고, 송 진종(眞宗)은 제(帝)에 봉했으며, 명 태조(太祖)는 신(神)으로 추존했다.


화산 그림산행을 함께 마친 후 유진생(劉秦生) 섬서미술관 경리는 “항산까지는 얼마 멀지 않으니 함께 동행해 안내하겠다”

고 앞장선다. 대동에 있는 운강석굴을 거쳐 항산까지는 1,000km가 넘는다고 최경화(섬서미술관 전속 가이드)씨가 살며시

귀띔해준다. 그리 먼 거리를 타국 친구를 위해 ‘잠깐’이면 된다니…. 다시 한 번 국경 없는 우정을 느낀다.

 
▲ 취병봉과 현공사.

호수보다 넓은 황하의 대교를 건넜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척박하고 나무 하나 없는 황토고원을 거슬러 올라 대동으로

향한다. 화산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진종일 고속도로를 달려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대동에 도착했다.


항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현공사

다음날 아침 8시에 대동에서 16km 떨어진 운강의 암벽에 있는 석굴을 찾았다.

운강석굴은 북위 문제 때 사문통(沙門統·승려의 우두머리) 운요(雲曜)가 만들기 시작하여 당나라 초기까지 계속하여

판 것이라 한다. 약 1km에 걸쳐 산재한 53개의 동굴에는 최대 17m의 좌상(坐像)에서 수cm 크기의 불상 51,000여

체가 새겨져 있다.


 낙양 용문석굴, 돈황 막고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3대 석굴 중에서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채색불상도 함께 볼 수 있다. 제7~19동굴까지 제각기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중국 전통적 조소에

인도,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의 예술이 합쳐져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항종전으로 오르는 도사.

운강석굴을 보고 나니 이곳은 버려진 땅이 아니라 신이 선택한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잠재능력이란

이토록 무한한 것인가. 예술혼의 경지는 과연 어디까지란 말인가. 혼이 살아 숨쉬는 작품들 앞에 나는 머리를 조아린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재촉, 항산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북으로 50km 떨어진 곳에 내몽고와 경계를 이룬 만리장성이 있지만, 우리는 남으로 95km를 달려 천하장관인

현공사를 안은 항산을 찾아 떠난다. 매캐한 연탄 냄새가 진동하는 작은 마을을 지나 황토고원 산악지대를 굽이굽이 찾아

든다. 마음은 급하지만 곳곳에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는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우리에게 ‘만만디(천천히)’ 한다.


산서 고원지대는 황토고원의 동부에 위치한다. 퇴적한 황토가 산간 곡지와 분지를 형성해냈고, 거의 반 정도의 지표가

돌로 덮여 있어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들은 푸른 산을 꿈꾸며 하얀 페인트칠을 한 작은 돌들을 쌓고 거기에 나무

를 심어 놓았다.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 관제묘로 가는 길.

험준한 산길을 굽돌아 12시가 넘어서야 항산에 있는 현공사(懸空寺)에 도착했다. 이태백이 그토록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할 말을 잃고 썼다는 ‘장관(壯觀)’석 앞에 서서 천길 단애에 걸친 현공사를 올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항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현공사는 취병봉(翠屛峰) 산허리 선암절벽에 매달려 1,400년의 긴긴 세월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고고하게 견디어 왔다.


현공사의 사(寺)라는 글자에 이끌려 이곳을 불교 사찰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북위시대를 대표하는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의 제자가 창건했다. 구겸지는 선화(仙化·도사의 죽음을 일컫는 말)하면서 공중에 사원을 건립하라는

부탁을 남기는데, 그의 제자 이교(李皎)가 북위 태화 15년(491)에 건립한 것이 현공사다.

현공사의 원래 이름이 ‘玄空寺’라는 사실에서도 도교적 색채는 한층 강하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현공사(懸空寺)에는

불상 외에도 각종 도상(道像)들이 함께 안치돼 있다.


현공사를 구경한 뒤, 유 경리가 고기를 좋아하므로 산닭 오골계탕에 이곳의 특미라는 황미(黃米·황색 찹쌀) 빵으로

식사를 마친 후 항산산문으로 향했다. 현공사 주차장 입구에는 ‘항산(恒山) 2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바위굴 파서 조성한 구천궁

희미한 백열등 몇 개가 달린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니 넓은 호수가 보인다. 척박한 땅에서 물을 바라보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기분이다. 현공사에서 쳐다본 협곡의 거대한 댐이 가로막고 있던 바로 그 호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달리다보니 황산산문에 도착했다. 현공사의 요란한 상가지역과는 달리 주위는 너무
썰렁하고 상점이나 빈관(여관) 하나 없다. 항산 등산을 마치고 이곳에서 1박할 계획을 세운다면 낭패다. 
 
▲ 비석굴 가는 길.

항산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은 들르지 않고 현공사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는 모양이다. 대동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강석굴만 보고 되돌아가듯. 웅장한 항산산문 오른편에 작은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있는 노인 석상이 눈길

을 끈다.


산문에서 입산료를 내고 자동차로 점점 고도를 높이며 20여 분 오르니 삭도(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약간의 상점이 있으나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다. 여름철 성수기에만 장사하는 모양이다. 삭도 정류장에는 조금 전 산문

입구에서 본 노인상이 그보다는 훨씬 큰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허리 굽은 노인은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있으며,

악기를 가슴에 안고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다름 아닌 도교를 대표하는 8신선 중 한 사람인 장과로(張果老)다.


8신선 중 2신선의 근거지가 항산이라고 한다. 여동빈이 이곳에서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즐겼으며, 장과로는 여기서

은거하며 수련을 쌓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과로의 신선상을 이곳에 세운 모양이다

 
▲ 대부송과 진무묘.

청나라 때 민간신앙에서 가장 숭배한 3대신은 관제(관우), 여동빈(중국 대신선), 관세음(불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제, 관세음, 제물신을 모신다. 제물신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산문에서 삭도 정류장으로 오르며 바라본 산천은 나무 하나 없는 척박한 땅이었으나 삭도를 타고 대묘를 향해 오르며

바라본 항산의 협곡과 산정은 신비하리 만큼 울창한 숲이 사원들을 감싸고 있다. 산이 도술을 부리는 것인지 내 눈이

잠시 환각에 빠진 것인지 혼란이 온다.


우리는 삭도에서 내려서 산문 옆 매표소에서 다시 입산료를 내고 소나무숲과 어우러진 ‘人天北柱’(인천북주) 현판이

달린 산문을 통과하여 구천궁(九天宮)으로 들어선다. 솔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구천궁은 한눈으로 보아도 고색이 창연하다. 이곳의 묘(廟)나 궁(宮), 전(殿), 사(寺) 모두 각기의 다른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다. 건물들은 워낙 경사가 심한 산록이라서 어떤 것은 아예 굴을 파서 동굴에 제전을 마련하였고, 아니면

건물의 반쯤이 굴속에 들어가게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산정 가까운 곳에 있어 조망은 일품이어서 가슴이 탁

트이고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하다.


구천궁을 둘러보고 관우가 신이 되어 모셔졌다는 관제묘(關帝廟)로 향한다.

관제묘 뜰에 서서 멀리 중첩한 태행산맥(太行山脈)을 바라보며 말발굽소리와 관우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는다.

태행산맥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태행산 일천리(太行山 一千里)라 할 만큼 거대한 산맥이다.

 
▲ 침궁으로 오르며.
 

항종전에서 바라본 조망 거칠 것이 없어

이곳은 건물의 규모나 동수에 비해 도사들이 몇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눈에 띄는데 각기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

이곳은 찾는 사람들이 적으니 도사들이 표주(漂周)를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사들의 수련과정에서

3년에서 5년은 필히 거쳐야 하는 필수조건이 표주라고 하니 말이다.


표주(漂周)는 주머니에 돈을 갖지 않은 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하며, 표주를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의약에 관한 기술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사주팔자를 보아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학문이 탁월

해야 한다. 이를 갖추면 어떠한 상황이 처하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래서 도사들은 보따리에 침과 귀한 약재를

넣고 다닌다. 표주를 해야만 사람이 겸손해지면서 세상사를 간파하게 된다. 세상물정을 모르면 엉터리도사다.


다시 숭영문(崇靈門)을 통과하여 ‘이곳으로 내려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은 가파른 108계단을 올라 항산대묘인 정원전

(貞元殿)에 이른다. 가파른 계단은 항산의 108봉우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원전 또는 항종전(恒宗殿)이 있는 곳을 북악대묘라고 한다. 동악 태산의 대묘나, 남악 서악 중악 모든 대묘들이 산

아래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에 거대한 규모로 조성돼 있지만, 이곳 대묘는 북악으로 정해지기 이전부터 있었던 고묘

를 개수한 것이라고 한다. 항산의 산이름과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속세와는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이곳이야말로 선유동이라 할 수 있으며, 무위자연을 주장하며 벽곡(화식을 금하고 생식만을 하는 도사의 식사)을 하며

무소유를 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도사들이 거처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악인 이곳에서는 도교의 5방신 가운데

하나인 북악대제를 모신 사당 외에도 옥황각, 삼청궁, 순양궁, 백운동 같은 도관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항종전에서 바라본 조망은 어느 것 하나 거칠 것이 없다. 항종전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회선부(會仙府)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관제묘다.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북악 침궁이다. 회선부로 오르는 길에 오악을 상징하는 마크가 새겨진 비석은

하도 많이 만져서 손때가 묻어 광택이 난다.


명대에 건축한 회선부(會仙府) 또는 집선동(集仙洞)은 벽에 동굴을 파서 옥황각(玉皇閣)을 모셔 놓았다.

회선부에서 나서니 천봉령(天峰岺)으로 오르는 계단에 ‘恒頂(항정), 琴棋臺(금기대)’로 표시된 이정표가 새워져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여름철에만 개방한다며 철문을 굳게 닫아 두었다. 금기대는 여동빈이

거문고를 타며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곳이다. 항정(恒頂)으로 오르는 절벽에는 대형 글씨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 항산험로.

다시 침궁으로 향한다. 곳곳에 벽돌을 쌓고 붉은 칠을 했다. 침궁을 오르며 대묘 뒷편의 항산 정상과 북악묘를 바라보니

선계를 그린 산수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스케치를 하다보니 유 경리가 큰 소리로 “꾸어 왼 주(필자 이름 곽원주)!”하며

산이 떠나가라 이름을 부른다. 보이지 않아서 내가 길을 잃어버린 줄 알았다는 것이다.


다시 산문을 나서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산허리에 난 임도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한다. 멀리 주차장 옆에 진무묘의 평온

하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을 내려서니 솔바람소리가 발길을 붙잡는다. 아쉬움에 산정과

어우러진 항종전을 뒤돌아본다. 항상 변하지 않은 항산이 그곳에 있다.

오른편 항산암(恒山岩) 절애에 새겨진 키보다 몇 십 배 큰 ‘恒宗’이란 글씨가 이곳 항산의 모든 것을 대변해준다. 항심

(恒心)은 나의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가는 언어이지만 이곳 항산에 오니 더욱 깊은 뜻을 알겠다.


북송 때 화가인 곽희(郭熙)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嵩山多好溪(숭산다호계·숭산은 아름다운 계곡이 많고)

華山多好峰(화산다호봉·화산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많으며) 衡山多好別岫(형산다호별수·형산은 아름답고 특이한

묏부리가 많고, 常山多好列岫(상산다호열수·상산=항산은 아름답게 늘어선 묏부리가 많으며,

太山特好主峰(태산특호주봉·태산은 특히 주봉이 아름답다).

그리고 5악 이외도 천태산, 무이산, 여산, 곽산, 안탕산, 민산, 아미산, 무사협곡, 천단, 왕옥산, 임려산, 무당산 등은 모두

천하의 명산거악(名山巨嶽)으로서 세계적으로 경치 좋은 곳이다’라고 했다.


황산을 보고 5악을 두루 다 보았으니 어느 산을 찾아갈꼬. 에라, 무릉도원 금편계곡(金鞭溪谷)에서 세심(洗心)이나 하고

불교 4대 명산이나 찾아서 떠나야지.

월간산/ 그림·글 곽원주 blog.empas.com/kwonjoo50 협찬 자이언트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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